출발 : 2003년 4월24일 도착 : 2003년 11월 27일 (총 218일)
::: Where are we? ::: 아시아 대한민국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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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8일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사장을 하고 싶다던 우리 반쪽, 드디어 회사를 하나 차렸네요.^^덕분에 저도 다시 일을 시작했구요. 여행에서 돌아온지 벌써 4년 2개월.그때 쌓은 마일리지로 올봄엔 베트남을 다녀올까 한답니다.... - 이쁜 아메바 mingk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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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그리고 가끔 흐림 오전 10시, 빈 시내의 슈테판 성당에 도착하였다. 평일이라 비교적 한산할 줄 알았는데 성당 앞은 인파도 상당히 많고, 성당에서는 행사도 열리고 있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오늘은 오스트리아의 공휴일로, 카톨릭과 관련된 휴일이라고 한다. 지나가던 성당의 관계자에게 물으니 찬찬히 설명을 해주지만 성당의 용어들을 모르니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여튼, 성스러운 날이라 한다. 고딕 양식으로 보이는 뾰쪽한 첨탑과 성당의 외벽은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많이 변색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더욱 멋지고, 푸른색 계열의 성당 지붕은 문양과 색깔이 아주 잘 어울린다. 성당은 12세기부터 약 200여년에 걸쳐 완성되어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섞여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눈으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고 그저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것만 실감할 뿐이다. 성당의 규모는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이나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외관의 모습은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심의 한 가운데 세워져 있어, 멀리서 한눈에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가까이서 고개를 한껏 재치고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당을 지나 다음은 도나우 강가로 향한다. 아메바가 도나우 강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해서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강가로 나갔다. 생각보다 강의 규모가 작아서인지 약간 실망스러운 눈치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책에서만 보았던 도나우강을 직접 봤다며 그것만으로 만족해 한다. 시내의 몇몇 유적을 더 지나 다음은 빈 외곽의 중앙 묘지를 찾아 나선다. 음악가의 묘지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브라암스, 모짜르트, 베토벤 등, 유명한 음악가들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가이드북의 관광 코스를 따라가다 보니 이젠 별 데를 다 가는구나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온다. 음악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중앙 묘지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리고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찾아가자 유명 음악가의 묘지가 나온다. 묘지의 한쪽에는 음악가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묘지는 꽃들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 빈에 묻혀 있는 음악가가 이렇게 많다니, 빈이 음악 도시라는 것을 또 다른 면에서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묘지를 둘러보다 보니 이곳에는 음악가만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묘지에는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과 유명 학자들의 묘지들도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묘지의 공통점은 비석이나 동상 혹은 묘비명들이 굉장히 잘 꾸며져 있고, 무덤 또한 꽃들로 잘 장식되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인들의 묘지에 대한 정성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오스트리아 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멋지게 맞이하고 싶어하고, 묘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책을 통해 본적이 있는데 과연 그러한 모양이다. 중앙 묘지를 나와 서둘러 쉔부른 궁전으로 향했다. 합스부르그 왕가의 여름 궁전이었다는 아름다운 궁전, 안에 꽤 많은 보물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겉만 대충, 대충이다. 오스트리아 궁전의 분위기만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어느덧 해는 거의 다 넘어가고, 그리 많은 곳을 돌아본 것도 아닌데도 속도가 꽤 늦은 우리의 발걸음 탓인지 벌써 저녁 시간이 다되어 간다. 오늘은 어제 역에서 헤매던 우리를 구해준(?) 한국인 여행객들과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다. 빈의 돼지 갈비(?)가 꽤 맛있다는 숙소 주인 아저씨의 말에 저녁 메뉴는 돼지 갈비로 결정되었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호프부르그 왕궁의 콘서트 홀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가기로 되어있었다. 돼지 갈비와 음악회, 어감상으로는 뭔가 잘 안 어울리는 듯 하다. 하긴, 내가 음악회, 그것도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가는 것도 잘 안 어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저녁 6시, 넷이서 숙소 주변의 음식점으로 갔다. 돼지 갈비, 메뉴판에는 독일어로 적혀있고 그 밑에 영어로 ‘Pork Rib’이라 적혀있다. 한국말로 돼지 갈비라 했을 때는 오스트리아의 돼지 갈비가 어떨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는데, 영문 메뉴를 보니 그제서야 어떤 음식인지를 알 수 있었다. 돼지의 갈비뼈 부분을 소스에 발라 구운 것으로, 한국에서도 몇 번 본적이 있는 메뉴였다. 이전에 한국에서 먹어본 것은 별로 좋은 줄 몰랐는데, 이곳 빈의 돼지 갈비는 맛이 상당히 괜찮다. 거기다 시원한 맥주까지 한잔 곁들이니 저녁 시간이 아주 즐거워진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기분 좋은 상태로 연주회장으로 향한다. 연주회는 8시 반부터 시작되어 10시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한 시간 반 동안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을걸 생각하니 슬며시 겁이 난다. 지금은 기분이 좋아 견딜(?)만할 것 같지만 중간에 졸지 않을까 걱정이다. 옆에 있는 아메바는 가기도 전부터 졸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좋은 자리를 잡기위해 약 30분 일찍 도착했다. 지금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클래식 연주회의 좋은 자리를 잡기위해 이렇게 애를 쓰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머리가 띵하다. 같이 간 일행의 남자도 나와 같은 종족(?)임이 틀림없다. 얼굴에 벌써 지루함과 두려움(?)이 나타난다. 시간이 되자 연주회는 시작되었다. 연주회의 레퍼토리는 대부분 요한 스트라우스의 곡, 그리고 모짜르트의 곡이 몇 곡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는 제법 잘 알려진 것들도 꽤 있다고 하지만 나에겐 모두 생소할 뿐이다. 그래도 아메바는 아는 곡들이 꽤 있는지 나를 상대로 열심히 잘난 척(?)을 한다. 지루할 줄 알았던 클래식 음악, 직접 들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듣기가 훨씬 좋다. 생소하던 악기들의 소리들도 바로 앞에서 그 울림을 듣는 것이 좋았고, 곡에 대한 이해는 전무한 상태이지만 아름다운 연주 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나의 한계는 곧 드러났다. 40여분이 지나자 즐거움이 슬슬 무료함으로 바뀌어 가고 졸음에 대한 걱정이 더해져 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무대에서 이상한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지휘자가 열심히 지휘를 하고 있는데 왼쪽 끝에 위치한 심벌즈의 연주자가 지휘자를 향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연주를 하면서도 눈을 흘기고, 중간, 중간 지휘자의 지휘가 잘못되었다는 듯 손가락질을 한다. 연주가 계속 되는 동안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가락질이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지휘자도 틈틈이 연주자에게 나무라듯 손짓을 한다. 처음 어리둥절하던 청중들은 어느새 그 둘의 다툼을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계속 되는 연주는 그들의 아옹다옹하는 모습과 어우러져 재미있게 다가오고, 사이, 사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들의 노래 소리도 즐겁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지켜보는 청중들은 경쾌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마침내 지휘자를 못마땅해 하던 연주자는 앞으로 나와 지휘자에게 다가가서는 악보를 가리키며 탓을 한다. 그리고 한 순간, 잽싸게 악보를 낚아채 청중들에게 보여 주는데 그것은 여인의 누드 사진이 있는 화보집이었다. 청중들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와중에도 콘서트 홀은 전혀 소란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대 위의 다툼 중에도 연주는 계속되었고, 경쾌한 음악 소리는 재미있는 광경과 어울려 더욱 즐겁게 들렸다. 공연이 거의 끝나고 마지막 곡이 연주될 즈음에는 문제의 연주자는 기다란 장총까지 들고 나와 연주에 맞추어 공포탄까지 쏜다. 물론, 박자에 맞추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 시간 반 동안 쉼 없이 클래식 음악을 들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졸음을 걱정했던 우리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오히려 유쾌한 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고, 딱딱하게만 생각했던 음악회는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니, 그들의 연주 실력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장난스러움이 섞인 공연이 잘 된 것인지를 평할 수 있는 능력도 우리에겐 없다. 하지만 어렵게만 생각되던 클래식 음악에 아주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 공연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관광객인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이 자칫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도 모르는데도, 기꺼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 지휘자와 연주자의 마음 씀씀이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음악 도시, 빈에서의 연주회,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연주회는 즐겁고,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그 날밤, 연주회장을 나서는 모두의 얼굴은 유쾌하기 그지 없었다. 한 마디 더: 언젠가 빈의 클래식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음악 도시 빈에서 조차 클래식 음악은 젊은 세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하였다. 음악을 전공하는 다른 나라의 유학생들이 아니라면 빈의 음악 대학들도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옛 것의 자리를 새로운 것들이 메워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연주회에서 본 지휘자와 연주자의 새로운 모습은 변해가는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연미복을 입고 청중을 상대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다정한 마음 씀씀이로 느껴졌고 아주 유쾌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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