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출발한 밤기차는 아침 일찍, 스위스의 쮜리히에 도착했다.
하지만 쮜리히에서는, 잠시 역 안의 열차 안내소에만 들러 인터라켄으로 가는 열차를 확인하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이곳은 다음에 자동차를 이용해서 다시 올 예정이라 이번에는 그냥 경유만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럽 여행 기간은 약 두 달 정도, 그 중 보름 가량은 지금처럼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서 여행을 하고
나머지 한달 반은 자동차를 빌려 여행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곳, 쮜리히는 자동차를 이용해 다시 와볼 요량으로 지금은 그냥 지나쳐가는 것이다.
알프스의 ‘융푸라우요흐’를 오르기 위해 인터라켄으로 갈 계획인데,
바로 가는 열차가 없어 중간에 몇 차례 기차를 갈아타야 할 모양이다.
어제 저녁 무렵부터 계속되는 기차여행이지만 간밤에는 꾸셋 (일종의 간이 침대칸)을 이용해서 그런지 그런대로 몸이 가뿐하다.
옆의 아메바도 그다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한가지 더 다행스러운 것은, 남미 대륙을 떠난 이후 시무룩하던 아메바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런던에서 덤덤한 얼굴을 한 채, 풀이 죽어있던 아메바가 자신이 좋아하는 로마를 돌아보며 기운을 되찾은 모양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위스의 전원 풍경, 그야말로 한 장의 엽서와 같은 모습이다.
산들도 너무 푸르고, 들판도 아주 잘 가꾸어져 있고, 그와 어우러진 집들의 모습도 너무나 보기 좋다.
기차가 나아가면서 풍경이 계속 바뀌어 가지만 길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그리고 오래된 오두막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잘 가꾸어져 있어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그런 모습에 샘이 나는지, 옆에 앉은 아메바는 너무 잘 가꾸어진 모습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중얼거린다.
사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스위스 사람들이 너무 부럽게 느껴진다.
지나온 남미 대륙에서는 좋은 주거 환경은 커녕, 기본적인 의식주나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 났었는데……
남 잘사는 모습을 보고 투덜거리는 우리가 너무 심술 맞은 것일까?
오후 2시경, 인터라켄에 이르러 기차를 한번 더 갈아타고 알프스 산자락의 라우터 부르넨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내일 아침에 융푸라우요흐 정상으로 가는 등산 열차를 탈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바로 내일 기차를, 그리고 날이 흐리면 하루쯤 더 기다려 볼 생각이다.
날이 흐리면 정상에 오르더라도 알프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등산 열차의 요금이 워낙 비싸 그러기에는 그 비용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하루치 숙박비와 시간을 더 소모하더라도 날씨가 좋을 때 올라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여행객들 중에는 좋은 날씨를 기다리느라 라우터부르넨에서 며칠씩 머무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숙소는 산밑의 캠핑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왕 산 좋고 물 좋은 이곳까지 왔으니 조금이라도 더 자연을 느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행히 캠핑장의 방갈로도 시설이 괜찮은 편이고 주변 경관도 나무랄 데 없다.
짐을 풀고 마을의 주변을 돌아보니, 아직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들지 않아서인지 그런대로 마을이 한적하다.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은 산 위의 빙하 녹은 물이 흘러 내린 것이라 색깔이 아주 희뿌옅다.
거의 절벽과 다름없이 깎아지는 계곡들이 마을을 온통 둘러싸고,
들리는 소리라곤 제법 힘차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뿐이다.
저녁 무렵, 알프스의 산중에 있는 느낌이 아주 푸근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비가 내렸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