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스페인 남부의 도시로, 유명한 아람브라(Alhambra) 궁전이 있는 곳이다.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이슬람 유적을 만나게 된 것으로,
이곳으로 오는 동안 간간이 이슬람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라나다에 비하면 온전히 남아 있던 것은 아니었다.
카톨릭의 대륙으로만 여겼던 유럽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본다는 것이 신기한 느낌마저 든다.
스페인에 이슬람 세력이 진출한 것은 8세기 초,
왕위 계승문제로 인해 용병으로서 스페인에 들어온 아랍인과 베르베르족은
자신들을 불러들인 스페인을 아예 정복해 버리고 이후, 800여년에 걸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게 된다.
그 뒤, 기독교도들에 의해 벌어진 국토 회복운동으로 인해 점점 세력이 약화되어
1492년,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쫓겨나게 되었다.
그라나다는 그러한 이슬람 세력의 근거지였으며,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 나스리드(Nasrid) 왕조의 수도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유명한 아람브라 궁전은 나스리드 왕조의 왕궁이자, 성채이고 요새이며 술탄의 거주지였던 곳이다.
아람브라 궁전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시간이 넉넉하리라 생각하고 천천히 시내를 돌아본 후, 궁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마터면 궁전을 보지 못할 뻔했다.
관람객으로부터 궁전을 보호하기 위해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 1일 관람객의 수를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착 했을 때는 오전 티켓은 벌써 다 팔리고 오후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다행히 오전에 도착하여 오후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오후에 왔다면 티켓이 모두 팔려 입장도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해서 티켓은 오전에 사고 입장은 오후 2시가 다되어서야 할 수가 있었다.
아람브라 궁전은 크게 네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북쪽 끝에 위치한 알카자바(Alcazaba), 그리고 술탄이 거주했던 나스리드 궁(Nasrid Palace),
숲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헤네랄리페 (Generalife), 마지막으로 도시 구역이던 메디나 (Medina)가 그것이다.
‘아람브라'는 아랍어로 ‘붉은성’을 뜻한다고 하는데 철 성분이 많은 흙과 돌로 지어진 궁전은 실제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맨 처음 간 곳은 알카자바, ‘알카자바’란 아랍어로 요새를 일컫는 말인데,
통상 이전에 보았던 ‘알카자르’에 비해 규모가 작은 요새를 칭한다.
규모가 크지 않고,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요새였지만 테라스에서 보는 전망만은 제법 훌륭해서
요새 아래로 구시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알카자바를 지나 술탄이 거주지인 나스리드 왕궁에 들어갔다.
왕궁은 수많은 정원과 연못과 분수가 딸린 여러 개의 홀(Hall)로 이루어져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모두들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형형 색색의 타일(Tile)로 장식된 홀의 내부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원함을 제공해 주고 있어,
더위를 이겨내는 아랍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각종 대부분의 방이나 입구의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이슬람 특유의 장식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소박한 듯 하면서도 아름다운 궁전의 모습은 언뜻 ‘아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연주곡의 감미로움을 떠올리게 하였다.
궁전의 옆에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이 있었다.
이슬람을 몰아낸 후,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라 하는데 별로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박물관에 대한 조건 반사적인 거부감 때문일까?
그래도 다행이다. 기존의 이슬람 궁전을 허물지 않고 그 옆 자리에 새로운 궁을 지었으니……
어느덧 출발할 시간이 다되어 간다.
흔치 않은 이슬람 유적인 아람브라 궁전에 좀 더 머물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다음 목적지인 세비야에 해지기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 가야 할 것 같다.
한 마디 더: 어제 저녁,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처음 본 그라나다의 모습은 우리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도시로 진입하는 외곽도로는 수많은 퇴근 차량들로 가득 메워져 정체를 일으키고 있었고,
도심의 많은 건물들도 대부분 현대식 건물로, 옛 흔적들을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아람브라 궁전과 궁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가에는 아직도 옛 모습을 상당부분 간직하고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한창 산업화 중인 도시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도시의 외곽엔 많은 아파트와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었고……
신시가는 현대식 건물들만 계속 세워지고 있어 스페인만의 특색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한순간, 너무나 빠른 시간에 현대화가 진행되어 한국적인 특색들을 느끼기 힘든 우리의 도시들이 떠 올랐다.
우리만의 특색을 찾기 힘든 우리 도시의 모습에 늘 아쉬움을 느꼈었는데,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이곳 그라나다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