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주인장이 준비해 준 맛있는 아침 식사 덕에 아메바의 기분이 훨씬 나아진 듯 하다.
게다가 어제 저녁의 메뉴는 맛있는 갈치 조림,
장기간의 여행 중 기대하지 못했던, 맛있는 우리 음식으로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전철을 타고 런던의 유명한 벼룩 시장을 보기 위해 나섰다.
Candem Lock 벼룩 시장, 지하철을 타고 간 일요일의 벼룩 시장은
중고품을 팔고 사는 전통적인 벼룩 시장을 기대했던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져버렸다.
넓은 지역에 걸쳐 형성된 시장의 모습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관광지 중의 하나에 불과해 보였고,
전통적인 벼룩 시장도, 현지 영국인들의 시장도 아닌 것 같다.
시장을 나와 다음은 대영 박물관으로, 학창 시절 여행 시에 가본 적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아메바는 처음이라 런던에서는 꼭 가보려 한 곳이었다.
한가지 반가운 사실은 물가 비싼 런던에서 거의 모든 박물관들이 무료라는 사실이다.
물론 입구에 박물관의 시설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의무적인 것은 아니니……..
잘 사는 나라의 여유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대영 박물관, 정말 엄청난 규모의, 그리고 너무나도 잘 관리되고 있는 박물관이었다.
전시물의 양도 엄청나고 각각의 전시물의 내용 또한 굉장한 것 뿐이었다.
일층의 이집트 전시실을 시작으로 관람을 시작한다.
소설로 인해 익숙해진 람세스 2세상, 아주 보존 상태가 좋은 파라오들의 미이라와 관,
상형문자가 새겨진 수많은 거석들 그리고 각종 보물들.
전시실의 한쪽에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 프랑스의 학자들이 찾아내고,
우여곡절 끝에 영국의 손에 넘어간 ‘로제타 석’.
이집트 이외에도 앗시리아, 그리스와 로마 등, 역사 속의 수많은 국가들의 유물이 잘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집트 유물의 수가 워낙 많아 이집트에는 과연 제대로 된 유물들이 남아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유물의 양과 내용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거의 전세계를 망라하는 규모도 놀라웠고,
그 동안 책에서나 보던 수많은 보물들을 직접 보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수와 규모가 너무 대단해 하루에, 특히 우리처럼 반나절에 박물관을 보는 것은 애초부터 너무 무리한 일이었다.
각 전시실별로 별도의 박물관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굉장한 규모였지만,
너무나 많은 유물은 각각의 귀중한 가치를 지닌 유물들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듯 하였다.
박물관을 나올 무렵, 맨 위층의 한쪽 구석에 마련된 우리나라의 전시관을 볼 수 있었다.
유물의 수나 종류도 무척 적어서 어찌 보면 별로 볼 것이 없었지만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이집트처럼 수많은 유물이 이곳, 박물관에 와 있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박물관을 돌아 나오며, 그 엄청남 규모와 잘 관리되고 있는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국의 수많은 유물을 약탈(?)해온 과거 대영 제국의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영 제국에서 자신들의 소중한 유물을 보는 피해 당사자들은 어떠한 기분으로 유물을 볼 것인지………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되어 간다. 민박집의 맛있는 저녁 식사를 떠 올리며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동안 시장기가 더해져, 숙소에 도착해 맛있는 저녁을 대하자 아주 행복해진다.
식사를 하는 동안 친절한 민박집 주인장이 우리의 런던 여행에 대해 묻는다.
어제도 그리고 그제도 같은 질문을 했었는데…….
‘오늘은 무얼 하셨어요?’
- 벼룩 시장 갔다가 거리 구경 좀 하고, 대영 박물관에…..
‘그것만?…… 오늘도 거의 한일 없네요.’
삼일째 듣는 같은 말이다.
숙소를 나서기 전 주인장은 친절하게 이것 저것 볼 것을 이야기 해주지만
우리는 늘 그것의 절반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어제도, 그제도 주인장의 끝 말은 ‘별로 한일이 없네요.’ 였다.
별로 한일도 없이(?) 맛있는 저녁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왠지 미안하지만,
아메바와 나의 여행은 그래도 즐겁기만 하다.
몇 마디 더:
1) 대영 박물관을 관람 하던 중, 한국인 단체 관람객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같은 개별 여행자들에게는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단체 여행객을 만나는 것은 운 좋은 일이다.
단체 관광객들은 의례 한국인 가이드를 동행하게 마련이고
그러면 우리 같은 이들도 덩달아 돈도 안들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제타 석’을 지날 무렵, 단체 관광객을 본 아메바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내 손을 잡아 끌며 슬며시 단체 관광객의 틈에 섞인다.
이윽고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되고 ‘로제타 석’에 관한 여러 이야기에 잔뜩 기대를 한 순간, 가이드의 엄청난 설명.
‘이곳에 있는 것이 그 유명한 로제타석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로제타석만 눈으로 딱 찍고 돌아가도 대영 박물관을 온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옆에 서있던 아메바는 너무나 엄청난 가이드의 설명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나도 일순간 현기증이 느껴진다. 아! 엄청난 설명, 그 보다 더 엄청난(?) 가이드……
로제타석으로 인해 상형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는 아주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후,
20여명을 한국인들을 이끌고 부산하게 다음 전시물로 발길을 돌린다.
우리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
중요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돌아볼 때면 늘 한국인 전문 가이드가 없는 것이 아쉬워
영어나 다른 언어권의 여행객들을 부러워 하곤 했는데, 하필 우연히 만난 한국인 가이드가…….
이후 다른 여행지에서도 한국인 가이드를 자주 만날 수 있었고, 그런 엄청난(?) 가이드도 간혹 볼 수 있었다.
어찌 됐든 대영 박물관에서 만난 그 한국인 가이드는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질 않을 것 같다.
2) 대영 박물관을 돌아볼수록 귀중한 유물의 가치에, 그리고 훌륭한 관리 시스템에 감탄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감탄이 더해질수록 그런 귀중한 유물들을 약탈했던 과거 대영 제국의 무식함에 어이없어진다.
그리스의 신전의 앞 부분을 통째로 들어와 신전을 꾸며 놓고,
앗시리아의 수많은 벽화를 그대로 들어내 박물관의 벽면을 장식하고,
그리고 커다란 기둥과 성문을 통째로 들여다 놓고 성문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어진다.
람세스 2세의 커다란 석상, 상형 문자가 가득 새겨진 무덤의 벽들과 파라오의 관들을 보면
이집트에 남아 있을 껍데기나 다름없을 무덤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영국의 잘 관리되는 대영 박물관을 돌아보며
영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얻어가는 것을 영국인들도 알고 있을까?
3) 런던의 민박집에 숙소를 정한 후, 한국에서 오신 어르신 한 분과 연 삼일째 술을 마신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자식이 공부하는 런던에서 며칠 더 머무시는 동안
우리와 같이 한인 민박집에서 지내시는 것이었다.
워낙 건강하시고 술을 좋아하셔 환갑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나 보다도 훨씬 술을 많이 드신다.
주로 얻어 먹는 쪽임에도 삼일째 이어지는 술자리가 좀 힘들어진다.
내일은 저녁 늦게까지 뮤지컬을 볼 예정이라 같이 술을 못할 것 같다.
한참 젊은 나는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어르신은 못내 아쉬워 하시며 몇 시에 들어오는지를 몇 번씩 물어 보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