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로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고대 로마인,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을 빌자면
‘현대 이탈리아인의 조상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고대 로마인’ 이다. 나는 그런 고대 로마인이 좋다.
특히, 로마 제정을 완성하려 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열렬한 팬이다.
여행 전, 여행 준비의 일환으로 일본인 여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2년 전, 반쪽의 권유로 책을 샀지만 바쁜 직장 생활 탓인지 진도도 잘 안 나가고 별다른 재미도 없었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읽기 시작한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재미있는 로마 이야기에 우리 둘 모두 푹 빠져 버렸었다.
아직 완결은 되지 않았지만 올해까지 11년에 걸쳐 나온 11권의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 국가에서 출발한 로마,
작은 도시 국가에서 중 서부 유럽, 소 아시아 와 북부 아프리카 대륙에 걸친 대 제국을 이룩한 고대 로마인.
우리가 그런 고대 로마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대표되는 로마의 지도층과
패자마저 동화시키는 그들의 훌륭했던 통치 시스템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2,3권에 걸쳐 나오는 1,2차 포에니 전쟁.
그 당시 풍요로운 북부 아프리카의 강국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간에
지중해의 제해권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막강한 부를 기반으로 구성된 부국 카르타고의 용병들과 로마의 시민으로 구성된 로마 군단간의 치열한 전쟁,
부국 카르타고의 용병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한 대가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로마 군단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난다.
1차 포에니 전쟁의 패장의 아들 한니발, 아버지의 패배로 인해 로마에 대한 원한을 키우며 ‘에스파냐’에서 세력을 키워,
코끼리를 앞세우고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본토로 쳐들어간 희대의 명장 한니발.
한니발에 의해 시작된 2차 포에니 전쟁,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고락을 같이 했던 한니발의 병사들과 명장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를 철저하게 유린한다.
이번에도 로마 시민들로 구성된 로마 군단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서지만 희대의 명장 앞에 수없이 죽어 나간다.
그리고 그 희생의 앞에는 로마의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들이 늘 앞장서 있었다.
십 수년간 이탈리아 반도를 무대로 치러진 2차 포에니 전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로마의 기반인 수많은 로마 시민과 많은 집정관들이 죽어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상징되는 로마 지도층의 솔선하는 희생과 로마인들의 애국심은
계속되는 패배와 커다란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조국을 굳건히 지켜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니발을 아프리카로 몰아넣어 승리를 거둔다.
어찌 보면 2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를 배경으로 한, 한 사람의 희대의 명장과 로마의 시스템과의 전쟁이었다.
이후, 기원전 1세기경 나타난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제국을 유럽의 전역으로 확장해가는 갈리아(프랑스 지역) 전쟁기를 읽으며 카이사르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어설픈 세계사 지식과 헐리우드의 영화로 인해,
무자비한 로마군과 향락과 사치에 빠진 로마의 황제에만 익숙했던 우리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어떻게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어떻게 대 제국을 이루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고대 로마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 고대 로마인의 도시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유럽 대륙의 이상기온으로 인해, 40도가 넘는 한낮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기대감으로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첫번째 목적지는 초기 로마의 출발점이던 일곱 개 언덕 중 하나인 ‘캄피돌리오 언덕’의 박물관.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언덕 위에 오르자 양쪽 박물관 사이에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의 중앙에는 로마의 오현제(五賢帝) 시대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 모습이 멋지긴 하지만 모조품에 불과하다.
진짜 청동 기마상은 보존을 위해 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고,
원래의 자리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모조품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입장료를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비싸다.
게다가 우린 학생도 아니니 할인도 받을 수가 없어 부담이 되긴 했지만
그 안에 있다는 로마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청동 조각상과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진짜 청동 기마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청동 기마상이 눈에 들어 온다.
유리 안쪽에 보관된 청동 기마상은 밖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진짜라는 사실이 좀 더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우리가 보고 있는 기마상은 수많았던 로마 황제들의 기마상 중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로마 황제의 기마상들은 후일, 기독교인들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지만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만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마상으로 오인되어 파괴되지않고 남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층의 전시실을 따라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청동 조각상이 보이고 유명 조각상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로마 황제들의 두상을 전시해 놓은 방에 들어서자 책을 통해서 낮이 익은 로마 황제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투스, 하드리아누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검투 시합을 즐겨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모델이 되기도 한 ‘콤모두스’….
방을 가득 메운 황제들 속에서 내가 알고있는 황제의 두상을 찾아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철학자의 방에서 ‘키케로’의 얼굴을 찾아낸 순간에는 웃음이 절로 터진다.
박물관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박물관을 나와 건물 뒤로 돌아가자 언덕 아래로 ‘포로 로마노’가 펼쳐진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한눈에 ‘포로 로마노’가 다 들어온다.
몇몇 복원을 해놓은 건물을 제외하면 폐허에 가까운 상태이지만
여러 신전과 바실리카, 그리고 도로들과 원로원 건물 등, 모두들 제자리를 잡고 있어
고대 포로 로마노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포로 로마노의 길을 따라 원로원 건물에 도착, 건물을 보려는 관광객들과 설명을 하는 가이드들로 입구가 북적북적하다.
건물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작아 다소 실망스럽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포로 로마노의 길을 따라 걸으며, 고대 로마인들을 떠올려본다.
잘 닦여진 도로와 훌륭한 건물들, 시민들을 위한 여러 개의 포룸과 바실리카.
지금은 폐허와 다름없지만 그 당시 대리석으로 덮여있었을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를 활보하고 다니는 고대 로마인들….
태양 아래로, 그것도 그늘 한 점 없는 포로 로마노를 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즐거운 상상이 우리를 달래주긴 했지만………
좀 전의 시원했던 박물관이 금새 아쉬워진다.
티투스의 개선문을 끝으로 포로 로마노를 빠져 나오자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과 콜로세움이 눈에 들어온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간다.
콜로세움의 내부의 모습보다도 외부의 모습이 훨씬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안을 들여다보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콜로세움을 지나자 다음은 베네치아 광장으로 이어지는 ‘황제의 거리’(Via Dei Imperiali)가 나온다.
거리의 양편으로는 카이사르 포룸, 아우구스투스 포룸, 트라야누스 포룸이 이어진다.
로마 시민의 수가 계속 증가하여 포로 로마노의 시설만으로 부족해지자 그 옆에 추가로 지어진 포룸들이다.
현재는 유적들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그 대신 포룸들을 따라 황제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우리가, 아니 내가 보고싶어 하는 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동상이었다.
길가를 따라 여러 개의 동상을 찾아냈지만 어느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머리였던 카이사르의 신체적 특징(?)과 동상에 적힌 이름을 가지고 찾아보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아우구스투스 황제덕에 모든 황제가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덤으로 가지고 있으니...
길거리는 대부분 관광객, 어렵게 찾아낸 이탈리아인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탈리아식 이름이 ‘줄리오 체사레’라는 것만 알려줄 뿐 동상을 알려주진 못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어느덧 저녁때는 다가오고, 슬슬 배가 고파 온다.
아무래도 나의 정상적인 컨디션 유지(?)를 위해 숙소로 가야 할 것 같다.
로마에서의 첫날, 이상 기온으로 로마의 더위는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고,
하루에 생수를 서,너 병씩 마셔가며 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로마의 유적들 덕에 그래도 즐겁다.
끼룩이의 몇 마디 더:
1) 포로 로마노에서 여러 개의 개선문을 보았다.
그 중, 티투스의 개선문을 지나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만났다.
한국인 가이드는 티투스 개선문을 설명하며, ‘티투스’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 지역을 정벌한 후,
그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하였다.
로마의 개선문, 혹은 개선식의 가치를 너무나 평가 절하하는 설명이었다.
로마의 개선문은 그저 최고 권력자의 의지로만 세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도시 로마가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는 동안 로마는 수많은 위기를 겪었고,
그런 위기는 로마 군단과 훌륭한 총사령관 (주로 집정관)의 능력으로 극복되었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승리 중에서 정말로 로마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즉 로마의 지도층인 원로원에 의해 건의되어지고 로마 시민의 인정을 받은 경우에만 총사령관이 개선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그런 후에야, 총사령관은 말을 탄 채로 로마에 입성하는 성대한 개선식을 치를 수 있었다.
물론 개선식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돈으로 시민들에게 하사금까지 돌려야 하였다.
로마에서의 개선식은 단지 힘있는 자의 과시가 아닌,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고 그것을 시민과 원로원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더 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그리고 개선문은 그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것이었지만 매 개선식마다 세워지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힘있는 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개선식이 행해지고 개선문이 세워질 순 있었겠지만,
그런 경우엔 황제에 대한 기록 말살형 (포악한 황제의 사후에 원로원이 결의를 하면 황제의 모든 기록을 말살하는 형벌)이 있던 로마에선
개선문이 제대로 남아 있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개선문을 단지 승리를 과시하기 위한 기념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좀 서운한 일이 아닐까?
로마사에 대한 짧은 지식을 배경으로 한 우리의 의견이다.
2) 저녁 식사 후, 로마의 명물인 스페인 광장을 보러 나갔다. 맛있는 로마의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그리고 다시 트레비 분수로 이동. 분수 주변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고
여러 사람이 분수 안으로 동전을 던져넣고 있었다.
등뒤로 동전을 던져, 분수 안으로 넣으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저마다 다시 오기를 희망하면서………
11년 전, 배낭 여행을 하며 나도 등뒤로 동전을 던져 넣었다.
가지고 있던 100원 짜리 동전으로, 물론 성공을 했었다.
그 효력이었을까? 지금은 사랑하는 아메바와 함께 로마에 와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등뒤로 동전을 던지고 있다. 물론, 성공.
한 십 년쯤 뒤에는 우리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올 수 있으려나?
너무 욕심이 과한듯하지만, 이번에는 비싼 유로 동전을 던져 넣었으니……… 혹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