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계일주 여행중의 비행 횟수는 24회이다.
맞나? 너무 많아 헷갈린다. 이렇게 많다 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덜렁대는 나의 반쪽과 못지않게 덜렁대는 나, 늘 무언가를 흘리고 다니는 편이라
219일간의 여행, 24번의 비행 중 약간의 사고는 예상이 된다.
그것이 큰 사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곳 페루에 도착한 지금, 이제까지의 비행 횟수는 여섯번,
그런데 우리가 겪은 비행 중 사고는 벌써 큰 것 4건, 사소한 것 1건
짧은 일정에 비해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벌써 공항마다 걸려 있는 baggage claim 이라는 간판만 보면 왠지 불안해진다.
앞으로 남은 수 많은 비행 중 우리는 또 어떤 일을 당하게 될까?
부디 큰 일이 없기를, 여행 일정에 지장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고 1- 4월 25일 타이 항공 / 방콕 -> 브리스번 : BAGGAGE CLAIM
밤새 한숨도 못자고 정신없이 탄 비행기.
출발 전날까지도 과연 떠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방콕을 경유하여 호주 브리스번에 내렸을 때 짐을 기다리는 동안
바쁘게 오느라 무언가 놓고 온 것이 없는지 왠지 불안하다.
옆에 있는 반쪽은 그저 졸리기만 한 듯…..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의 가방이 나오지 않는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우리의 가방…. 오 마이 갓.
왠지 모를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baggage claim 창구에 가서 문의를 하니, 아직 확인이 안 된다.
방콕에서 잘못 내렸거나, 우리가 탔던 항공기의 다음 기착지인 뉴질랜드로 가버린 것 같다고 한다.
우리는 비행기 시간에 쫓겨 바로 케언즈로 향하고 짐은 찾는 대로 보내 주기로 하였다.
그날 오후 확인 결과, 트랜짓을 해야 해서 염려했던 방콕에선 무사히 실렸는데 이게 뉴질랜드까지 그냥 가버렸다.
배낭들이 우리만 나두고 지들끼리 뉴질랜드를 실컷 느끼고 왔다.
덕분에 우리는 도착 후 이틀 동안 옷도 못 갈아 입고, 세면도구도 없이 지냈다.
첫번째 이벤트였던 호주에서의 래프팅은 레저용 등산화를 신고 했다.
물론 끝난 후에도 젖은 옷을 입고 다니고…..
우리가 겪은 첫번째 사고였다.
그 후 늘 짐에 대한 불안함을 달고 다닌다.
공항에서 Baggage claim이라는 단어를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사고 2 - 4월 28일 콴타스 항공 / 케언즈 -> 시드니 : 비행기에서 내려주질 않아?
케언즈에서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남미로 향했다.
아침 6시 비행기라 4시 기상, 4시반 숙소 출발, 5시 탑승 수속을 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다.
호주 국내선을 타고 시드니에 9시에 도착하여 산티아고행 10시 10분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상당히 빠듯하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니 이렇게 발권을 해 줬겠지.
탑승 수속 카운터에서 Baggage 라는 단어를 보자 덜컥 겁부터 난다.
안 되겠다. 들고 타야지.
들고 타려 하니 규정보다 무거워서 안 된단다.
며칠 전에 호주 올 때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고, Baggage claim 서류까지 보여 주고,
이번에 문제가 생기면 국제선 탑승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며 그냥 타겠다 해도 절대로 안 된단다.
할 수 없지 뭐. 이제 또 잃어버리면 그건 팔자다!
9시 10분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했다.
아 10분 늦었군. 10분쯤이야 뭐…. 그런데, 내려주질 않는다.
Gate connection에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며
대신 승무원이 국제선 탈 사람들의 티켓을 체크 한다.
갈아탈 비행기에 연락해주나 보다. 그럼 괜찮겠지…..
그런데,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착륙하고서 한시간을 넘게 그러고 있다.
Connection에 문제가 있으면 그냥 내려주고 버스를 태우든지 하면 될 것 아냐.
마침내 gate에 연결이 되고 몇몇 사람이 출구쪽으로 나간다.
우린 서둘러 나갔다. 근데, 이상하다. 상당수 승객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승무원이 자리에 가서 앉으란다. 여긴 캔버라 라고…
응? 왠 캔버라?? 우린 몰랐지만 우리가 탄 비행기는 캔버라를 경유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항공권으로는 알 수가 없었지만 참, 어이가 없다.
시드니도 아니고 경유지인 캔버라에서 이러고 있었다니….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더 있다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시드니를 향해 비행기가 이륙했다.
우리를 비롯한 국제선 트랜짓 승객들이 문의를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캐빈 매니저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시드니 도착 후 적절한 조치를 해 주겠다는 말만 한다.
9시 도착 예정이었던 시드니행 비행기는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당연히 10시 10분 산티아고행 비행기는 못 타게 되었고…
그나 저나 시드니에서 산티아고 가는 것은 월,수,금 3일밖에 없는데 난감하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수요일까지 이틀을 시드니에서 보내야 한다.
밀리는 일정을 어찌 조정하지? 휴.. 난감하다.
모르겠다. 어쨌든 지들 때문에 못 탔으니 콴타스 항공에서 호텔과 식사는 제공해줘야 하지 않나?
그럼 이틀동안 시드니에서 푹 쉬었다나 가 볼까?
캐빈 매니저가 국제선 승객들을 챙긴다. 모두 모아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오호라. 하는걸 보니 나 몰라라 하진 않겠군.
좋았어. 간만에 좋은 호텔에서 자겠는걸? 안그래도 몹시 피곤한데…..
밀린 일정은 나중에 생각해야지. 그냥 이틀동안은 좋은 호텔에서 푹 쉬어야지.
특급 호텔을 떠 올리며 캐빈 매니저를 쫄레쫄레 쫓아간다.
다음에 생길 일들은 예상도 못한 채….
사고 3 - 4월 28일 란 칠레 항공 / 시드니 -> 산티아고, 남미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정이 망가진 것은 까맣게 잊고,
특급 호텔에서 지낼 시드니에서의 이틀을 궁리하며 즐거운 상상에 바쁘다.
잠시 후 캐빈 매니저가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고
우리 일행을(우리 둘 그리고 브라질 여성 1명) 찾는다.
어이구 친절도 하셔라. 우리도 웃는 얼굴로 부름에 응했다.
축하한단다. 산티아고행 비행기가 아직도 안 뜨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다.
서둘러 탑승수속을 하란다. 우잉? 아직도 비행기가 안 떴다고??
원래가 1주일에 3일밖에 없고 늦은 승객들이 많아 기다렸나 보다.
우와 황당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세시간을 기다리다니….
우리의 즐거운 상상은 이렇게 20여분 만에 끝나고 서둘러 탑승수속을 해야만 했다.
아쉽다. 일정은 정상으로 돌아와 좋지만 특급 호텔에서의 이틀은 아무래도 아깝다.
쩝쩝… 불쌍한 나의 반쪽은 날아간 이틀간의 휴식이 아까운 듯 연신 쩝쩝거린다.
서둘러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이 비행기는 뉴질랜드 경유 비행기라 뉴질랜드행 승객을 포함해 상당히 많은 승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잘된 일 이지만 아침부터 기다린 사람들을 보니 참 불쌍해 보인다.
여기 저기서 어이없는 연착에 씩씩 거리고 있다.
방송에서 산티아고행 비행기의 BOARDING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고
우리는 남은 호주달러를 몽땅 환전하고, 줄을 섰다.
특급 호텔에서의 이틀은 아쉽지만 정말 다행이다.
불쌍한 우릴 하늘이 돕나 보다…… 라고 그 때 까지는 생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태울 생각을 안 한다. 우리 짐을 옮겨 싣느라 오래 걸리나 보다.
한 시간이 더 흘렀다. 어? 그런데 이건 너무 오래 걸리는걸?
직원한테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승객들은 저마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고
15분마다 하는 방송은 15분 후에 알려주겠다는 것 뿐…..
아침 일찍 일어나 비행기에 시달려 몸은 천근 만근인데 정말….
차라리 이 비행기가 제시간에 떴으면 콴타스 항공한테 대접이나 잘 받았을 텐데….
한참 후 방송이 나왔다. 캡틴이 아프단다.
휴~ 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대타도 안 세워 놓나?
그 방송만 하고 대책은 또 15분 후에 알려 주겠다고 한다.
배는 고프고, 호주 달러도 아까 다 환전해 돈은 없고,
카드로라도 사먹고 나면 그 후에 점심을 줄 것 같아 쫄쫄 굶고 있었다.
정신이 어지럽다. 내가 제일 못 참는 것은 배고픔인데….
2시가 넘어서야 방송을 한다.
오클랜드행 승객들은 오늘 밤 9시에 비행기가 배치되며,
점심과 음료수 쿠폰을 준단다.
그리고 산티아고행은 내일 아침 6시에 비행기가 출발하며,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의 1박과 저녁이 제공되며
점심은 룸서비스로 주문하면 나중에 란 칠레 항공에서 계산하겠단다.
오 우~그럼 진작 그렇게 했으면 일찍 가서 쉬기나 하지.
공항에서 이렇게 죽치고 있게 하다니…..
이리저리해서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3시 반. 정말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
우선 룸 서비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호텔측의 농간으로
룸 서비스는 고의적(?)으로 지연되고
결국 5시 반에 이르러서야 저녁을 허겁지겁 해치웠다.
호텔 측에서 제공하는 1회, 3분간의 국제 전화는 반쪽이 아주버님에게 전화를 하고….
전화 상태가 안 좋았는지 아주버님은 “여보세요”를 두 번 외친 후
4,5초 만에 무료 국제 전화를 마감해 또 한번 우리를 허무하게 하고…..
하루 두 번의 항공 사고에 지친 우리는
우리 여행 중 가장 비싼 숙소일 시드니의 한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잠 들기 전, 우리는 다짐했다.
아주 사소한 사고(Baggage claim)를 친 타이항공에는 절대 아무 말 말기로….
그런 사소한 실수에 불평하다 또 다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면서…...
사고 4 - 4월 29일 란 칠레 항공 / 시드니 -> 오클랜드 : 티켓이 어디 갔어?
모처럼 좋은 호텔에서 자니 몸이 개운하다. 우리 여행 중 가장 비싼 숙소겠지.
드라이기와 다리미도 있어서 어제 빨래를 몽땅 해서 말렸다.
(빨래 말릴 때 드라이기와 다리미가 긴요하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알지요. ^^)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니 벌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수 차례의 사고 탓에 공항을 보니 왠지 불안하다. 속이 울렁 울렁…
우리 차례가 거의 다 되어가고 티켓을 꺼낼 준비를 하는데….
오~우.. 내 티켓이 어디 갔지?
어제 체크인 할 때 받은 보딩 패스도 없고, 원래의 티켓도 없다.
하늘이 노랗다. 어쩌지 시간은 다 되 가고, 아무리 뒤져도 티켓이 나오질 않는다.
혹시나 해서 뒤지고 또 뒤지고…..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반쪽에게 물어봤는데,
분명 자기가 내 것까지 갖고 있다 해 놓고선
지금은 티켓 간수 잘 못 했다고 난리다. 얄미워 죽겠다.
치사하게 혼자 가진 않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보딩 패스 발급 시 찢어졌던 티켓의 일부 조각밖에 없다. 1/5이나 될까?
그래도 어제 체크인 했으니 기록은 남아 있겠지.
남은 쪼가리를 가지고 카운터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첫마디가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한다. 티켓이 없으면 곤란하다고…..
오~ 이러다 비행기 못 타는 것 아냐?
어제까지의 사고에도 황당해 죽을 맛인데, 날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잠시 후, 옆에 있던 상급 직원이 나의 찢어진 티켓 조각과
다른 티켓 (산티아고 -> 리마)을 맞춰보더니
그 다른 티켓의 영수증과 찢어진 티켓 조각을 증거 서류로 보관하기로 하고
보딩 패스를 다시 발급 해준다. 시간은 5시 50분, 출발 10분전…….
휴-우 천만 다행이다.
옆에 있는 반쪽은 아직도 투덜 투덜, 간수를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분명 어제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 해 놓구선. 으-으 얄미워.
점점 비행기 타는 것이 무서워진다.
앞으로도 20 여 번의 비행을 남기고 있는데, 다음엔 또 무슨 일이…..
사소한 사고 1 - 4월 29일 란 칠레 항공 / 시드니 -> 산티아고 : 비행기에서 왕따 당하다!
산티아고행 비행기에 드디어 몸을 실었다.
가느냐 마느냐 속 썩이긴 했지만, 이 비행기(란 칠레)는 참 좋다.
이코노미 석에도 개인 모니터가 다 있고, 전화기도 있다.
물론 여기서 걸면 돈 많이 나오겠지?
그리고 비행기 탈 때마다 불만이던 발 받침대도 있다.
개인 노트북 전원도 있고, 모니터를 통해 오락도 할 수가 있고….
최신형 비행기라서 그런가 보다.
최신형의 란 칠레의 비행기에서 자구, 책 보구, 영화 보구
긴 비행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아침 식사가 나왔다.
옆에서 반쪽이 깨운다.
먹는 것에 제일 민감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 반쪽, 훌륭하다.
물론 끊임없는 교육의 결과다.
평소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우리는 기내식을 아주 즐긴다.
추가 비용 없고, 먹을 만하고, 특히 우리 반쪽은 반납 할 때
절대 음식물 쓰레기를 발생 시키지 않는다.
옆에서 보면 감탄스럽다.
승무원이 밥차(우린 그냥 이렇게 부른다.)를 끌고 다가온다.
음- 냄새가 좋군. 흐믓…
계속 다가오던 승무원이 나를 지나친다. 윽.. 내 뒷 줄부터 시작이다.
순간 실망감이 밀려 온다. 할 수 없지. 참아야지.
한참 기다리는 동안 잠은 다 깨고 음식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고,
드디어 내 차례가?? 어라?? 승무원이 내 앞줄까지만 주고 다시 돌아간다.
옆의 반쪽을 봤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른 쪽의 호주인(아마도) 당황한다.
일단 점잖은 척 기다린다. 밥이 떨어져서 다시 가지러 갔나?
아니다. 돌아간 승무원은 맨 앞줄에 음료를 서빙하고 있다.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 으-으 또 한번의 비행기 사고군.
어느 정도 불편과 차질이 있어도 밥만 제때 주면 우린 웬만큼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음식에 관련된 사고는 참을 수 없다.
더군다나 다 주고 나만 안주는 이런 왕따는 정말 참기 힘들다.
더욱이 비행시간이 끝나 가고 있어 혹시라도 시간이 없어
안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더욱 급하다.
순간, 우리의 반쪽이 손을 번쩍 든다.
그리고는 승무원에게 우리에게 밥을 안 줬다고 어필(?)을 한다.
한순간 멍하던 승무원은 사태를 파악하곤 얼굴이 빨개져
서둘러 우리 줄의 식사를 가져온다.
사랑스런 나의 반쪽, 옆의 호주인도 흐믓한 표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