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일상 생활로 돌아오자 아메바는 원래의 ‘여우’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나도 더 이상은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지 않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나고 일본에서 보았던 아메바의 기억이 모두 잊혀질 무렵,
다시 돌아온 여름 휴가를 맞아 우리 둘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번 여행에 맛을 들인 아메바는 이번에 중국에 가보고 싶다며 나의 동의를 구하였다.
물론,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아이가 생기기전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기도 했고, 나 또한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배낭 여행을 한번 해본 때문인지 중국 여행을 준비할 때의 아메바는 상당히 능숙해 보였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가격이 싼 항공권도 찾아내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뻬이징과 텐진의 호텔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간의 일정도 짜고 필요한 여행 정보도 찾아내어 준비하는 등,
아메바의 여행 준비는 거의 완벽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제는 아메바가 여행에 익숙해져 중국 여행은 이전의 일본 여행에 비해 아주 순탄하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런 나의 소박한 바람은 중국에 도착해 하룻밤이 지나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자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막상 여행을 시작하자 여행 준비를 할 때의 총명함은 사라지고, 이전의 아메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바뀐 것이 있다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메바처럼 행동을 하고,
자신이 아메바라는 사실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지도를 보라거나 교통편을 확인해 보라하면 아주 환하게 웃으며 나의 요구를 무시하였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해 화를 내거나 구박이라도 할라치면
아주 어이없는 얼굴을 하며 자신이 아메바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훌륭한(?) 한 마리의 아메바였다.
그런 와중에도 어리버리하던 아메바가 갑자기 돌변하여 똘똘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무언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그냥 지나치려 한다거나,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을 보고만 지나치려 할 때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자기 고집을 세웠다.
여행 준비를 통해 머리 속에 정보를 가득 넣고 있던 아메바, 어찌 그리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지…
왜 또 그리 먹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지……
그렇게 일주일간 중국 여행을 하면서 우리들은 여행시의 서로의 모습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아메바는 종종 구박을 받으면서도 절대 웃음을 잃지 않고 변함없는 자신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 주었고,
성질 급한 나는 투덜대면서도 그런 아메바의 모습에 차츰 적응을 해갔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 갈 때쯤에는 우리는 꽤 잘 맞는(?)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사실, 나도 아메바에게 구박만 할 처지는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도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단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우선, 지도를 잘 보고 길눈이 매우 밝은 편이다.
한번 가본 길은 왠만해선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가격 흥정에 능하고, 힘이 좋아 짐을 잘 나른다.
또한 평소의 좋은 식성과 달리 배고픔도 비교적 잘 견딘다.
게다가 위생관념도 아주 흐릿(?)해 지저분한 곳에서도 잘 자고 잘 먹는다.
물론, 이런 특성들은 하인을 고를 때나 고려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장점임은 분명하다.
반면, 성질이 급해 상대방과 자주 언쟁을 유발시킨다.
지저분해서 같이 다니기 피곤할 때가 있다.
그리고 물건을 아주 잘 흘리고 다니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잃어버리는 물건은 미리부터 여러 개씩 준비하기도 한다.
아메바로부터 자주 구박을 받는 것은 건망증이 심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항들을 자주 깜빡 해서, 같은 증상을 보이는 아메바로부터도
‘장멘토’(영화 ‘메멘토’에서 따 온 것임.)라 놀림을 받기도 한다.
이런 단점들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치명적인 나의 단점은 쫀쫀(?)하고 고약하다는 것이다.
아메바가 심한 말을 하면 쫀쫀해서 잘 삐치고, 그럴 때면 고약스럽게 성질을 부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메바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다.
어찌 됐든, 나 역시도 만만치 않은 상대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메바는 이런 나에 대해 별다른 불평 없이 튼튼하고 씩씩하게 잘 따라 다녔다.
이렇게 우리는 결혼 이후 두번에 걸친 해외 여행을 통해 서로가 꽤 잘 맞는 여행 동반자라는 것만은 확실히 확인하였다.
그리고 다시 2년 뒤, 그 동안 막연히 꿈으로 간직하고 있던 것을 실행하게 되었다.
2002년 겨울, 다니던 회사에 둘이 동시에 사표를 내고 여행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8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본 우리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2003년 봄, 약 7개월간의 세계 일주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아내가 아메바란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아메바는 세계 일주 항공권을 찾아내어 반쪽짜리이던 우리의 여행을 완전한 지구 한바퀴 여행으로 바꾸어 놓았고,
20여 회가 넘는 골치 아픈 항공기 일정도 무리 없는 일정으로 만들어 놓았다.
항공권을 싸게 사기위해 한국에서 호주의 여행사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항공권을 구입하고 신용카드로 결재까지 해냈다.
대부분의 여행 일정도 아메바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여행 정보를 뒤져가며 남미의 루트도 완성시키고, 낯설기만 했던 터키, 이집트, 요르단 등
난생 처음 가보는 곳들의 여행 일정도 제법 훌륭하게 만들어 냈다.
그리고 여행 준비의 일환으로 관련 서적도 많이 읽으며 여행을 준비했다.
이런 아메바의 모습에 나는 어느새 이전의 아픈(?) 기억은 모두 잊고, 아메바에 대한 걱정을 모두 털어 내었다.
그리고 씩씩하고 총명해진 아메바에 대해 적잖이 기대를 하며 여행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나의 이런 순진한 기대는 얼마가지 않아 또 다시 깨져 버렸다.
씩씩하고 총명하던 아메바는 한국을 출발하면서 자신의 총명함은 한국에 놓아둔 채,
그저 씩씩함만을 무기로 나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첫 여행지인 호주 대륙에 도착하고 난후,
지도를 꺼내 들고 의견을 구하는 나에게 그저 환한 웃음으로만 대꾸하는 아메바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한 마리의 완벽한 아메바를 데리고 7개월간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